2021 2월 G레터
나는 왜 친절해야 하는가
글을 시작하기 전에 짧은 상상을 하나 해 봅시다. 당신은 지금 거래처와의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그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그런데 불행히도 곁에서 와인을 따라주던 웨이터의 실수로 당신의 양복에 와인이 엎질러지고 맙니다. "죄송합니다, 손님!"당황한 웨이터의 사과가 들려오는 이 순간,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A. 오늘 아침에 바빠서 샤워를 하지 못했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이 옷도 사실 싸구려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B. 당장 주인 오라고 해! 내가 누군지 알고... 당신 당장 해고시킬 수도 있어! 같은 상황에 대한 대답임에도 불구하고 각 대답이 가진 감정의 색깔은 정반대입니다.당신이라면 어떤 대답을 할 것이며 그 대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저마다 다른 이유로 대답을 하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당신의 대답 한 마디에 따라 목전에 둔 거래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방위산업체 CEO 빌 스완슨의 '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비즈니스 규칙 33가지'에 '당신에게는 친절하지만, 웨이터에게 무례한 사람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바로 '웨이터의 법칙'입니다. 빌 스완슨은 '다른 건 간혹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이 웨이터의 법칙만은 결코 오차가 없는 확실한 비법'이라고 말하며 해당 법칙에 대해 큰 자신감을 보입니다. 실제로 의류업체 CEO 브렌다 반스는자신에겐 한없이 친절하던 거래처가 웨이터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보자마자 거래를 중단했고 IT업체 CEO 데이브 굴드는 웨이터의 실수를 흔쾌히 웃으며 감싸주는 거래처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단번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그만큼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고민을 합니다.하지만 의외로 사소한 말 한 마디에서 우리는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실수를 저지른 웨이터를 향한 폭언으로부터 자신의 권위를 무기처럼 휘두르는숨겨진 이면을 엿볼 수 있는 것처럼요. 그리고 이 말은 당신의 말 한 마디 또한 당신의 인성을 엿볼 수 있는실마리가 될 수 있단 의미이기도 합니다. ‘웨이터의 법칙’은 비단 고급 레스토랑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출근길 버스를 운전하는 버스기사, 지하철 개찰구에서 마주친 역무원,경비실에 맡긴 택배를 건네주는 경비원 등이 세상에는 수많은 ‘웨이터’들이 존재하고 그들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 보이는 태도 하나로 당신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무언가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이 당연하고도 지나치기 쉬운 사실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다 보면 당신의 오늘이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2021 1월 G레터
다시 일어서기까지
삶을 살아가다 보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그 사건은 사람이 가득한 광장에서 갑자기 넘어지거나최선을 다해 준비한 발표회에서 할 말을 까먹은 일일 수도 있고끔찍한 사고나 재난에 휘말려 몸과 마음에 지우기 힘든 상처를 입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제각기 다른 형태의 사건이지만그 사건이 당사자에게 가져온 충격과 아픔은 타인이 감히 판단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게 그 정도의 일인가?’싶은 일조차도 누군가에겐 ‘트라우마’라는 큰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외상 및 영구적인 장애를 남길 정도로 심각한 충격을 의미하는 ‘트라우마’는 당사자들로부터 하여금 우울증, 불안증 및 무기력증을 느끼게 만듭니다. 절대 넘지 못할 것 같은 산을 앞에 두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막막함에 주저앉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나 시간이 지난 후에 누군가는 주저앉아있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눈앞의 산에 첫 발을 딛습니다. 무엇이 그를 산으로 향하게 했을까요?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예전에 적국에 포로로 잡혀 오랫동안 고문을 당했던 미군 중 60%가 당시의 고난이 심리적으로 유익했다고 답했던 것을 언급하며 ‘모든 이는 극도의 충격을 받으면 고통스러워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디딤돌 삼아 성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흔히 알려진 개념인 PTSD,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 ‘외상 후 성장(Post traumatic Grouth, PTG)’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주목한 그는 ‘끝없는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과 외상 후 성장을 하는 사람의 시작은 유사하지만 초점을 ‘당장의 우울 및 불안’에 두는지, 아니면 ‘이후 다가올 회복에 두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만일 당신의 소중한 친구가 극복하기 어려운 고통 한복판에 서 있다면, 그리고 그 친구가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불안을 호소한다면 당신은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이 슬픔과 불안에 빠져 더 깊은 고통에 같이 빠져드는 것이 아닌,그의 고통을 이해하고 희망의 언어들로 응원의 마음을 보낼 것입니다.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때에는 그러한 말들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불안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무작정 희망을 찾으라며 등을 떠미는 것 또한 상대를 위한 응원이라 말하기 힘듭니다.친구 혹은 당신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슬픔과 불안을 ‘그렇게까지 느낄 수 있어?’의 시선이 아닌 ‘그렇게까지 느낄 수 있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시야에 슬픔과 불안이 아닌 그 너머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 같이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진정한 응원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는 끝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2020 12월 G레터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⑦: 헬 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의로울까요? 많은 이들이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완벽하게 정의로운 세상을 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 같습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우리는 모두 경쟁을 통해 강자가 되고 싶어 할 수는 있어도, 약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에는 조금 인색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의로운 세상은 강자와 약자 구분 없이 모두가 인간으로서 삶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공정한 환경이 마련된 세상 아닐까요?지금 소개해 드리는 영화 헬프는 1962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당시, 신문사에서 살림 정보 칼럼을 쓰는 신세대 여성 스키터가 펜 끝으로 밝혀내는 흑인 가정부들의 억울함과 백인 여성들의 이중적인 삶에 대한 고발을 유쾌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은 17명의 백인 아이를 헌신적으로 돌봤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은 사고로 잃은 사연 많은 여성입니다. 음식솜씨가 일품이었던 ‘미니’는 폭풍우가 쏟아지던 밤 밖에 있는 흑인 전용 화장실을 쓰지 않고 집주인의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비참하게 쫓겨났습니다. 고상하고 품위 있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이 우아한 백인 여성들은 아프리카 난민을 구제하기 위해 옷을 기부하는 행동은 하면서도함께 생활하는 흑인 가정부들과 절대 화장실은 함께 사용할 수 없다며 ‘가정 위생 법안’을 제안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스키터와 흑인 가정부들은 이러한 부정의를 세상에 고발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팔을 걷어붙입니다. 고상함 뒤에 숨겨진 백인 주인들의 추악함과 억울하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면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은 불공정함을 목격해 왔으며,정의롭지 못한 역사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2020년 5월 25일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 사는조지 폴로이드는 경찰 데릭 쇼빈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조지 폴로이드는 여러 번 “숨을 못 쉬겠어요” 라는 말을 했지만 경찰은 이를 무시했습니다.이미지 출처 :한국경제이렇듯 여전히 미국사회에는 뿌리깊은 인종차별이 존재합니다하지만, 불공정함에 대항하기 위해 애쓰는 정의로운 움직임 역시 분명 존재했습니다.타이터스 카파 Titus Kaphar (1976~)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주제로 미술사를 재구성하는 화가 꾸준히 역사와 사회문제에 발언하며 매번 자기 작업을 설명한다. 그 이유는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세상을 변화시킬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Babá brincando com criança em Petrópolis”, Jorge Henrique Papf, 1899 / “Space to Forget”, Titus Kaphar, 2014Yet Another Fight for Remembrance / 2014 Analogous Color, 2020이처럼 우리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다만 우리의 작은 움직임이 곧 공동의 선을 확장하는 일이라는 것을 믿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실천하는지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불공정함을 당연시한다면 우리의 사회는 변화하지 않습니다."매일매일 새롭게 살아가는 거야 아침에 일어나면 새로운 결심을 하는거야 너 자신에게 물어봐 오늘 나를 험담하는 바보 같은 말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영화 헬프 대사 중-현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 모인다면, 세상은 변화합니다.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행해야 할 실천 행동들에 대해서 고민해 봅시다.
2020 11월 G레터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⑥: 명 량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조상들이 헌신과 희생,그리고 피와 땀으로 지켜낸 곳입니다. 다시 말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충성의 열매를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충성이라는 것은 올바른 소신을 가지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사랑과 헌신을 다 하는 것입니다.나의 뿌리가 되는 대한민국을 위해 내가 어떤 사랑과 헌신을 할 수 있는지, 군인으로서어떤 신념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11의 추천영화는 협력으로 기적을 일으킨 ‘명량’입니다.우리가 이 시간 함께 볼 영화는 바로 이순신 장군(해군에서는 제독으로 표현)의 이야기를 담은 ‘명량’입니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조선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해있는 상황이었습니다.무서운 기세로 북상하는 왜군에 대항하기 위해 당시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었던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이 됩니다.하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여 무기력에 빠져있고, 백성들 역시 강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모습을 드러내고, 압도적인 적의 기세에 누군가는 좌절하고 두려움에 떱니다. 포기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330척에 압도 당하기 보다는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라고 고백합니다또한,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명의 적도 떨게 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보여줍니다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허락된 작은 것으로도 충분히 큰 결실을 이룰 수 있다고 믿은 것 같습니다.아마도 이러한 점이 이순신 장군을 위인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요?왜냐하면 이러한 신념을 통해 모두가 ‘포기’를 외칠 때 그는 ‘도전’을 외쳤기 때문이죠.그가 가진 작지만 강한 신념은 곧 충성의 행동으로 나타났고, 이것이 우리나라를 존속하게 했습니다.또한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용기 있게 감당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로 인해 가능했습니다.누군가는 숨은 곳에서 땀을 흘리며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저었고, 칼을 잡지는 못하더라도 ‘노라도 젓게 해달라’며 충성을 다했습니다. 힘든 싸움을 마친 그분들은 소박한 음식을 먹으며 ‘먹을 수 있어 좋구나.’라고 기뻐합니다.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작은 기쁨과 평안은 모두 그 분들의 땀과 피로 가능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대한민국 백성들이 평안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역시 국군 장병들의 노력과 수고로 이루어진 다는 점에서 용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우리가 가진 작은 신념은 우리의 삶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신념이 없다는 것은 뿌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나의 올바른 소신을 지키면서, 공동체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애국심이자 헌신이자 선공후사의 정신이 아닐까요.
2020 10월 G레터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⑤: 호튼
동물들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자연에서 생존하는 방법 중 하나로 ‘협력’을 선택해 왔습니다. 제아무리 동물의 왕 사자라도 혼자서는 무리 지어 움직이는 동물들을 성공적으로 사냥하기는 어렵습니다. 무리로부터의 이탈은 곧 큰 위험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역경의 상황에서도 작은 힘을 모은다면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10월의 추천영화는 협력으로 기적을 일으킨 ‘호튼’입니다. 호튼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정글에서 티끌을 보호하기 위해 노심초사합니다. 하지만 정글의 우두머리 캥거루는 이런 호튼의 모습을 탐탁지 않아 하며, 쓸데없는 소리로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티끌을 없애려고 합니다. 호튼은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티끌 속 작은 마을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마을」 사람들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주는 호튼과 소통하며티끌 속 누군가 마을을 알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외치기 시작하지만, 소리가 티끌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애가 탑니다. 평소에 늘 혼자 있던 「누군가 마을」 시장의 아들 조조 역시 자신의 아지트에서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많은 소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그렇게 모두의 소리가 합해졌고, 드디어 티끌 속의 소리는 세상으로 터져나가 정글 동물들에게 전해졌습니다.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결국 「누군가 마을」 사람들의 작은 힘들이 모아져서 티끌 속 마을은 평안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은 문제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 혼자’라고 생각한다면 막막함이 더해지겠죠. 하지만 나와 함께 마음을 모으고, 힘을 더할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가요?나 한 명의 외침은 절대 티끌 밖 세상으로 펴져 나갈 수 없지만, 우리 모두의 목소리는 불가능으로 가능으로 변화시킵니다. 이렇게 나와 함께 기적을 만들어 낼 누군가가 바로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들입니다.이들과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소통하고, 창의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2020 9월 G레터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④: 그린북
살아가면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아마 ‘존중’이 아닐까요?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분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걸 보면,존중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바람이라면 아마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존중’을 원하겠죠. 그런데 어떤가요? 존중이 그렇게 쉬운 이야기 같은가요? ‘존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9월의 추천 영화는 ‘그린북’입니다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남자와 편견을 깨고 싶었던 남자의 만남. 흑인이면서 백인처럼 살아가는 셜리와 백인이면서 흑인처럼 살아가는 토니,이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그린북 영화를 통해 존중 덕목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실화로, 인종과 생각, 행동, 말투, 심지어 취향까지 너무나 다른 두 남자의 격한 우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1960년대의 미국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입니다. 운전기사 토니는 흑인들이 마신 컵을 쓰레기통에 버릴 만큼 심한 인종차별주의자였습니다. 그러던 중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가 토니에게 자신의 연주회를 위해 남부 투어를 도와줄 운전사로서의 역할을 제안합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곳으로 투어를 하는 중에 이유 없이 맞기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인격모독의 욕설을 듣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대에서 연주하는 셜리에게 많은 백인 청중들은 찬사를 보내지만, 무대 밖에서는 천재 피아니스도 그저 흑인에 불과했습니다.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토니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설리 박사를 지켜주게 됩니다. 고상함과 교양으로 무장한 셜리 박사와 맞춤법 하나 제대로 모르는 단순하고 과격한 토니,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은 어느새 서로에게 물들어갑니다.셜리는 공연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없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이러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셜리 박사를 보며 토니는 그를 대변하며 대신 화를 내고 싸워줍니다.반면 셜리박사는 초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당시 흑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셜리 박사. 그는 흑인 사회의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흑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백인답지도 않으면, 그럼 난 뭐죠?”라는 대사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셜리 박사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공허함이 묻어나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곳입니다.그 중에는 강자도 있고, 약자도 있으며, 다수도 있고 소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인종, 성별, 직업을 뛰어넘어 모두가 인간으로서 연결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와도 따뜻함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2020 8월 G레터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③:라이언 일병 구하기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면서,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들 외에도자신의 자리에서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 개인위생 챙기기 등 "개개인의 ‘책임’을 실천하는 모두가 우리 사회의 영웅입니다." 이런 ‘책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8월의 추천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입니다.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③:라이언 일병 구하기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전쟁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사실적인 부분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용사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한편, 미 행정부에서 전사자 통보 업무를 진행하던 중 라이언 가의 4형제 중 3형제가 이미 전사하고 막내 제임스 라이언 일병만이 프랑스 전선에서 싸우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조지 C. 마셜 육군참모총장은 네 명의 아들 중에서 세 명을 잃은 라이언 부인을 위해 막내 라이언을 구출하여 어머니의 품으로 돌려보내라는 작전을 지시합니다. 밀러 대위는 이 임무를 받아 소수정예 대원으로 팀을 구성하여 작전에 투입이 됩니다. 생사를 확신할 수 없는 라이언 한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난제 속에서 최전선에 대원들이 투입되는데, 그 지역은 하필 독일군 사이에 고립된 아주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극적으로 라이언 일병을 찾아내지만, 라이언 일병은 동료들을 두고 혼자 살겠다고 돌아갈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그리고 구출팀과 함께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밀러 대위는 “라이언 꼭 살아서 돌아가. 잘 살아야 해, 우리 몫까지”라는 말을 남기고 적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됩니다. 생존한 라이언은 먼 훗날 노인이 되어 밀러 대위의 묘 앞에서 조용히 고백합니다. “최대한 잘 살려고 노력했고, 그런대로 잘 살아왔습니다. 최소한 대위님의 눈에 대위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보였기를 바랍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책임이란 각자의 위치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큰 틀에서 책임을 조명해 보자면,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넘어서 우리의 삶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 대한 책임으로 우리는 옳은 일을 행하고(솔선수범),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역할 책임), 그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다하는 것(행위 책임)이 가능해집니다. 우리의 삶은 유기적으로 타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우리의 삶이 유지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밀러 대위에게 했던 라이언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최대한 잘 살려고 노력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는 것,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삶은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고 그 자체로 솔선수범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번 주 집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를 보면서, ‘책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책임을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사단법인 한국인성교육협회
2020 7월 G레터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②: 굿 윌 헌팅
여러분은 용기 있는 사람인가요? 용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저는 지금부터 용기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장민희 심리학 박사 이 영화 속 주인공 ‘윌 헌팅’은 역사,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특히 수리 능력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비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동네 양아치들과 몰려다니며 주먹질을 하는 전과자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몇 번에 거친 입양과 파양, 그리고 양부로부터의 심한 학대를 받아 마음속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고, 겉으로는 당당해 보이고 거만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겁쟁이였습니다. 그는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면서 랭보교수가 학생들에게 내놓은 공개 수학 문제를 그 자리에서 외우고 집에 돌아와서 수식을 풀어 학교로 돌아가 답을 적어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랭보 교수가 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윌은 폭력 사건으로 인해 실형에 처해지고, 랭보 교수는 판사의 허락 하에 그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수학 문제를 풀 것을 조건으로 그를 빼내게 됩니다. 하지만, 윌은 정신과 치료사에게 거칠게 저항을 하는데요, 그러던 중 랭보교수의 대학 동기인 숀 교수를 만나 상담을 받습니다.여전히 윌은 숀에게도 빈정거리고, 심지어 숀의 아내를 모욕하다가 숀에게 목 졸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여곡절을 반복하면서 둘은 상담을 이어가게 되고, 숀은 윌에게 진정한 인간관계가 무엇이고,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차분히 설명합니다. 경험하지 못하고 지식으로만 무엇을 아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윌이 사랑에 대해서 수십편의 시를 읊고, 철학자들의 명언을 줄줄 읊을지는 몰라도 그는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무언가를 경험하고 교감하는 것, 즉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가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에 다가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강하게 저항을 하던 윌은 숀의 말에 그동안 묵혀왔던 마음 속 어두운 다락방의 문을 열어냅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숀의 말이 강한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이렇게 용기를 내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 윌은 이 내면의 힘을 바탕으로 진짜 자신의 천부적인 역량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됩니다. 삶에서 직면하는 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는 용기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몰입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행복도 바로 이렇게 자신 스스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방어 없이 자유롭게 그것을 즐기면서 몰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용기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이 직면해야 하는 여러분의 진실된 모습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용기, 진실함의 용기에 한발 더 다가가 봅시다.
2020 6월 G레터
영화를 통한 인성 산책 ①: 트루먼 쇼
내가 진짜 살아가는 목적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올바른 판단과 자기관리를 통해 결국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성의 시작이자 인성의 목적입니다. 장민희 한국인성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심리학 박사 트루먼쇼를 보면서 ‘혹시.....나도....?’ 라는 의문이 생겨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든 순간이 잘 짜여 진 각본에 의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탭들에 의해서, 너무나 감쪽같은 연기자들에 의해서 진행된 리얼리티 쇼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떨 것 같나요? 진실함이 하나도 없는 삶을 진실로 믿고 살았던 한 남자, 트루먼의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태어날 때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전 세계 시청자에게 생중계 당하고 있는 남자, 바로 트루먼입니다. 그의 삶은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하고 평화롭게 돌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시리우스라고 적힌 큰 전등이 떨어집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는 자신의 삶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하나씩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를 방해하는 조연들 덕분에 심증은 있지만 물증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네요. 자신의 삶에 대해서 회의를 느낀 트루먼은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물 공포증입니다. 트루먼은 어릴 적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은 충격으로 인해 물을 두려워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험난한 바다로 향합니다. 그의 인생을 기획한 프로듀서는 그가 이 세트장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온갖 장애물을 만들고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물’을 활용 해 거센 파도와 폭우를 동반해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큰 역경으로 그의 도전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만들어진 스튜디오 세트장의 벽을 만지며 자신의 가짜 세상을 뒤로한 채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우리의 삶에 의문을 던져 보는 것이 기나 긴 인생 여정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진짜 나의 삶인가? 혹시 나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세트장 속에서 그냥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트루먼이 두려움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진짜 자기를 찾아서 나선 것처럼 우리의 진짜 삶과 정체성을 위해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진짜 살아가는 목적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올바른 판단과 자기관리를 통해 결국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성의 시작이자 인성의 목적입니다.
2020 5월 G레터
진짜 목표 가짜 목표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곧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지를 대변해 줍니다. 당신은 어떠한 꿈을 꾸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의 원천은 어디입니까? 장민희 한국인성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심리학 박사 ‘나’의 정체성으로서의 ‘목표’ 삶이 행복으로 가득 찼을 때를 떠올려보면, 아마도 많은 경우 내가 삶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을 때 일 것이다.특히 청년들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 자신의 삶의 목표설정이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가는 시기의 청년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과정 가운데 필연적으로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자기self’를 이해함에 있어서 심리학자들은 개인이 가지는 삶의 가치와 목표 등을 매우 중요한 주제로 인식하였다. 즉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원하는지, 무엇을 꿈꾸는지 등과 같은 목표설정이 곧 그 자신을 대변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목표와 꿈이 없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나 꿈을 꾸는게 나을 법도 하지만, 그렇다고 늘 목표가 건설적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당신이 꿈꾸는 목표는 정말 건설적인 목표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당신의 목표의 원천이 어디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건적인 사랑을 위한 가짜 목표 어린 시절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에 인색해진다. 타인으로 부터 오는 사랑이 대부분 ‘조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if~then’형태의 사랑과 인정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과 보상을 인식하게 한다. 더 많은 물질을 얻고, 더 많은 명예를 얻고,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될 때 우리의 존재 가치도 더 많이 향상될 것이라는 신념에 우리는 상당히 익숙해져 있다. 또한, 어린 시절에 ‘강요된 나’의 모습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형태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그것이 실제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얻기 위한 목표는 실제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Rogers, 1961). 자신의 내면적인 성찰을 통해 스스로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해 가기 보다는, 타인과 외부 환경으로 주의가 집중되어 온전히 몰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시작되는 진짜 목표 진짜 목표는 아마도 내가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가운데 희열, 기쁨, 감사 등의 긍정 정서를 경험하게 할 것이다. 반면, 가짜 목표는 타인이 기대하는 나의 모습에 내가 도달하지 못할 때 불안, 우울, 죄책감 등의 부정정서를 야기할 수 있다. 진정한 자신이 되어가는 삶의 목표의 기준은 외부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온전한 자신으로 성장해 가고자 하는 목표의 기준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이지만, 타인(혹은 사회)에 의해 강요된 목표의 기준은 항상 외부 어딘가에 존재하기 때문에 훨씬 가변적이고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발달과업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청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방법을 몰라 당황해 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원하는, 남들이 기대하는 기준과 가치를 추구하고 타인만큼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번쯤 정말 자신이 정말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고민을 해 보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왜냐면 우리는 타인과 같으면서도,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Rogers, C. R. (1961). On Becoming A Person. Boston: Houghton Mifflin.
2020 4월 G레터
진짜 인성 좋은 사람
많은 이들이 현대 사회문제를 지적하면서, 요즘 사람들에게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인성은 어떠한가요? 인성의 문제가 항상 타인의 문제이기만 할까요? 장민희 한국인성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심리학박사인성교육에 몸 담고 있는 필자는 가끔 화가 나는 상황에서 우스갯소리로 동료들에게 “어디 가서 절대 우리 회사 이름을 말하지 마.”라고 얘기한다. 한번은 근무하던 중 점심식사 배달을 주문했는데 오매불망 기다리던 밥이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참다못해 확인한 결과, 그 식당은 우리의 주문을 접수만 하고 음식은 만들지를 않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던 때 우리는 밀려오는 배고픔에 슬퍼하고, 주인의 무책임한 반응에 분노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 분노를 표현하려던 순간 나는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문득 들었다. 그 이유는 음식점 주인은 신경도 쓰지 않을 주문목록 속 우리의 기관명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즉, 작가는 맞춤법을 틀리지 않고, 심리학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며, 의사는 몸에 나쁜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처럼,인성교육을 담당하니까 인성이 좋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화도 내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작용할 것 같았다. 그럼 ‘인성이 좋다’는 고정관념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여러 댓글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흔히 그러한 문제의 원인을 ‘인성’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여러 사회 이슈들이 인성의 문제라는 점에 대해 필자 역시 동의를 한다.또한 우리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타인을 착취하거나 무책임한 사람들을 보면 속된 말로 인성이 안 되어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그렇다면 과연 인성이라는 것이 이처럼 사회적인 요구나 기대에 부응하는 즉, 타인 지향적인 도덕적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인성, 곧 행복의 문제 우리는 흔히 인성의 문제를 사회의 유지를 위해 개인이 함양해야 할 자질이나 특성으로만 생각하기 쉽다.하지만, 사실 인성은 본질적으로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반드시 함양해야 할 덕목이다. 즉 스스로의 삶에 대한 주인의식, 자신에 대한 수용, 그리고 그 속에서 타인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성숙이고 인성이다. 심리적 안녕감psychological-wellbeing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에 뿌리를 둔 Ryff(2018)의 관점만 보더라도, 인성이 우리의 행복에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바로 알 수 있다.이 관점은 삶을 통해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발달해 가는 것,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룬다. 구체적으로 크게 6개의 차원으로 이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데, 자율성, 개인적 성장, 자기수용, 삶의 목적의식, 환경에 대한 통제감, 긍정적인 관계가 그것이다. 먼저, 자율성은 타인의 인정을 기대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내적인 기준에 따라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으로서, 일상을 지배하는 관습 혹은 규범으로부터 억압이 아닌 자유로움을 얻는 것이다. 이는 자기결정권, 자기 조절능력과 같이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긍정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핵심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두 번째, 개인적 성장이란 스스로의 잠재력을 성취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진짜 자기의 모습을 깨닫고 온전한 자기를 실현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세 번째, 자기수용은 자신의 과거를 포함하여 그림자와 같이 어두운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수용은 개인의 강점뿐만 아니라 약점까지도 인지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진정한 자존감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네 번째, 삶의 목적의식은 자신의 삶에서의 방향성을 인지하고, 삶에 대한 전반적이고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역경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다섯 번째, 환경에 대한 통제감은 자신의 심리적 욕구에 적절한 환경을 선택하거나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자신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간의 적합성을 고려함으로써 복잡한 환경을 조절하고 통제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타인과의 긍정적인 관계는 깊은 우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능력, 타인과 친밀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성숙한 사람의 대표적인 특성이자 정신건강에 매우 핵심적인 요인이다. 인성 좋아서 남 줄까 필자는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저 사람들은 인성교육이 필요해요’라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 봤어도, ‘저는 인성교육이 필요해요’라는 사람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언제나 인성은 나의 문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평가하는 잣대로만 쓰이기 때문인 것 같다.하지만 인본주의심리학자들을 비롯해 앞서 소개한 Ryff 등에 따르면 인성은 나 스스로의 성숙, 그리고 그로인해 내가 누리는 진정한 행복과 관련이 있다. 즉, 인성은 당위적이고 도덕적인 규범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온전한 모습을 향해 스스로를 다듬어 가는 것, 이를 통해 심리적 안녕감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자신 스스로의 인성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이러한 긍정적인 자질들을 함양할 때, 바람직한 친사회적 행동도 가능해진다. 인성은 ‘나’에서부터 시작해서 ‘사회’ 속으로 스며들어 궁극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풍요롭게 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Ryff, C. D. (2018). Eudaimonic well-being: Highlights from 25 years of inquiry. In K. Shigemasu, S. Kuwano, T. Sato & T. Matsuzawa (Eds.), Diversity in Harmony - Insights from Psychology: Proceedings of the 31st International Congress of Psychology (pp. 375-395). New York, NY: John Wiley & Sons Ltd.
2020 3월 G레터
N번방의 가해자들
최근 많은 이들의 분노를 유발하고 있는 조주빈과 N번방,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단순히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넘어서 인간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장민희 한국인성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심리학 박사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늘 양면성을 갖추고 있다. 잘못에 대한 죄책감은 바람직한 것인가? 자신 스스로를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좋은 것인가? ‘우리’라는 연대의식은 필요한 것인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분노를 유발하는 하나의 사건, 조주빈과 N번방의 가해자들에게 이러한 특성을 대입해 본다면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다. 가해자들이 이렇게 뻔뻔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앞서 언급한 질문들과 연결해 보면, 우리가 평소에 바람직하다고 여기던 심리적 특성들이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흔히 긍정적으로 기능한다고 알고 있는 심리적 기제들이 오작동함으로써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이 사례를 통해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들은 피해자들을 철저히 ‘비인간화(dehumanization)’함으로써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여기서 비인간화란 특정한 집단을 인간이하의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그들이 인간으로서 갖는 보편적인 인지적, 정서적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다(Haslam, 2015). 1. 죄책감과 책임감의 두 얼굴: 인간 같지 않으니까 괜찮다. 죄책감 혹은 양심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심리적 장치이지만, 양심이라고 불리우는 사감선생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합리화’이다. 살인을 하고도 가해자들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한 자기방어적 합리화를 하기 때문일 수 있다. 즉, 죄책감을 해소하는 수단이 꼭 잘못을 변상하거나 사죄를 하는 식의 바람직한 행동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인지적인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한 합리화를 하는데, 그 중 하나의 수단이 바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귀인을 외부(피해자)로 돌리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 즉, 나의 행위가 잘못 됐다는 것도 인지하고, 행동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인지할수록 오히려 이러한 심리적 불편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 원인을 피해자의 잘못 혹은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안녕을 유지하는 것이다. 2. 특권의식과 권력: 내가 더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희생은 당연하다. 굉장히 급진적인 의사들이 치료를 하는 경우, 환자에 대한 비인간화가 드물지 않게 발생할 수 있다. 환자를 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단순히 내가 치료를 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경우 그들의 존엄성보다는 내가 치료를 성공적으로 했다는 것이 목적이 되고 환자는 나의 성공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흔히 개입되는 것이 위계적인 권력과 사회적 지배성이다. 이것이 특권의식의 무서운 측면이기도 하다. 나를 파리미드의 상층부에 두고, 대상이 되는 존재를 하층의 위계에 둘 경우, 그들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나보다 열등한 그들이 갖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이 인간으로서 나와 같은 감정과 사고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가해자에게 불편한 진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러한 기본적인 특성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충분한 면책사유가 된다. 3. 잘못된 사회적 연대: 나만 그러는게 아니니까 괜찮다. 사회적 연대는 인간에게 중요한 심리적 완충역할을 한다. 즉, 혼자일 때는 불안하고 자신 없는 행동이 나와 유사한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인간은 전혀 다른 심리적 특성과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인간은 옳은 일이 아니라 다수가 행하는 행동을 규범으로 인식함으로써 그것이 잘못된 행동일지라도 그에 대한 정당성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나 외에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범죄에 대해 관대해 진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옳은 일을 행하고 있는지를 역으로 보고 해 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더 생각해 볼만한 문제 우리는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누군가를 비인간화 할 수도 있고, 때로는 나보다 더 강한 외집단에 의해서 비인간화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번 N번방의 사태는 단순히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 혹은 사이버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으로 그치지 말아야한다. 그보다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신의 심리적 편의를 위해, 그리고 물질적 이익을 위해 나보다 약한 대상을 비인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괴물이 수면위로 올라오기 전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심리상태의 인간이라면, 우리는 상황에 따라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존재이다. 누군가를 악인으로 규정하는 형태의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인간의 본성적 특성을 기억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상황의 힘을 세팅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상황의 힘 중 하나는 좀 더 현실적인 법과 제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고려한 실효성 있는 사회적 차원의 교육일 것이다. <참고문헌>Haslam, N. (2015). Dehumanization and Intergroup Relations. In M. Mikulincer, P. R. Shaver (Eds.), APA Handbook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2(pp. 295-314).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2020 2월 G레터
생애 마지막 고백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화와 죽음의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 힘이 있습니다."한국인성교육연구소 장민희 책임연구원/심리학박사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 그리고 죽음을 향해 삶이 흘러간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큰 도전일 수 있다. 비단 죽음이 나이든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흔히 우리는 죽음이 노화의 결과물이라 인식하곤 한다. 우리도 고령사회가 되어가면서 잘 죽는 것(well-dying)의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호스피스ㆍ완화의료의 이용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을 2016년에 제정하여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의 취지 역시 잘 죽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삶의 종착점에서 발견하는 진정한 지혜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 단원에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기의식(sense of self)을 지향하게 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점에 긍정심리학자들은 주목한 바 있다. 그들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들이 역설적으로 삶을 더 건설적으로 만들고 성장하도록 촉진하는데 기여하는 지혜(wisdom)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는 인지적, 정서적, 그리고 행동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꽤 복잡한 개념이다.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지혜는 사회적인 의사결정을 잘 하는 것, 친사회적 태도와 행동, 자기에 대한 이해,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처를 현명하게 하는 것, 정서적으로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을 포함하며, 관용과 판단하지 않는 자세,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 영성, 그리고 유머 등을 포함한다(Banget et al., 2013). 이러한 지혜는 대중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만국에서 공통되는 덕목이자 가치임은 확실해 보인다. 이에 라이트 등(2018)은 죽음 앞에선 사람들 15명(남 4명, 여 11명)에게 ‘지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삶의 마지막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다(Wright, Breier, Depner, Grant, & Lodi-Smith. 2018). 연구 결과, 참여자들은 지혜의 가장 핵심적인 특성으로 겸손을 꼽았다. 즉, 지혜는 자신이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지혜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 타인과 지식을 공유하는 것, 자기를 이해하고 현재의 삶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은 질병과 죽음에 직면해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죽어가는 과정이 긍정적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즉, 그들은 죽음의 과정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목적의식을 갖고, 명상하며, 지혜를 넓히고, 관계를 강화하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죽음 앞에 선 참여자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 중 하나가 가족 및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로, 서로를 돕고 밀접하게 연결된 삶을 중요시했다. 또한 자신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 영적이고 종교적인 삶, 그리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도 이 목록에 들어 있었다. 그러면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였다. 지혜, 결국 죽음 앞에서 진정한 ‘나’로 남는 것 필자는 이 연구에서 제시한 여러 삶의 의미와 지혜들을 살펴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마지막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깨닫게 되는 지혜의 본질이 무엇일까 고민해 봤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결국은 ‘나’라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이라는 끝자락에서 결국 남는 것은 ‘나’자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 이 연구의 한 참여자는“우리가 어릴 때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지를 생각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의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진짜 나를 위한 일을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생애 마지막의 고백, 그것은 무엇일까? 많고 많은 고백 중에 ‘자신의 삶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그래서 결국은 진정한 나로 생을 마감할 수 있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이러한 고백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고백이 아닐까. <참고문헌> Bangen, K. J., Meeks, T. W.,& Jeste, D. V. (2013). Defining and assessing wisdom: A review of the literature. The American Journal of Geriatric Psychiatry, 21, 1254-1266. Wright, S. T., Breier, J. M., Depner, R. M., Grant, P. C., & Lodi-Smith J. (2018). Wisdom at the end of life: Hospice patients’ reflection on the meaning of life and death. Counselling Psychology Quarterly, 31(2), 162-185.
2020 1월 G레터
간절할수록 멀어지는 이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욕구가 지나칠 때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인성교육연구소 장민희 책임연구원/심리학박사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장 지키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자신 스스로’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언제나 안전하고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여러 가지 환경적인 도전과 역경이 도사리고 있고, 때로는 과업적인 실패와 관계에서 오는 상처도 견뎌야만 한다. 이러한 스트레스적인 인생 사건으로부터 야기되는 의심과 걱정을 대처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 중 하나는 타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확신을 얻는 것이다(Joiner, Katz, & Lew, 1999). 나는 가치있는 사람일까? 부정적인 생활사건을 경험하면 사람들은 가장 크게 두 가지 의심을 하게 된다. 먼저는 자신 스스로의 존재 가치,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몸담고 있는 세상의 안전성에 대한 의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아마도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 고통 중 가장 극심한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의심이 든다면 우리는 더 이상 나를 지속시킬 이유를 상실하게 되고 이는 우울정서와 연결될 수 있다. 우리가 그토록 개인의 자아존중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아존중감의 핵심 요소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self worth)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안전한 곳일까? 또 하나, 세상에 대한 안전성의 의심은 불안정서와 연결될 수 있다. 불안은 그 특성상 미래와 연결되는 정서이다. 과거의 안 좋았던 경험을 토대로 미래의 부정적인 사건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신념이 우리로 하여금 불안감을 경험하게 한다. 우울과 불안은 모두 인간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정서이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심리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대처 전략이 필요한데, 그 중 하나는 타인으로 부터 자신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계속해서 확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울과 불안이 야기하는 과도한 확신 추구 우울과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과도한 확신추구는 대인관계를 망칠 수 있다. 혹시 주변에 자신의 부정적인 정서를 완화하기 위해 과도하게 반복적으로 확인을 하는 타인이 있는가? 문제는 그들이 상대방이 제공하는 답변을 수용하는지의 여부다. 과도한 확신추구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 요술 항아리와 같기 때문에 그들은 보통 타인의 답변을 수용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적인 미봉책으로 자신의 부정정서를 순간적으로 가라앉힐 수 있지만 금새 또 다시 동일한 문제에 휩싸인다(Orden & Joiner,2006). 사람들은 자신이 꽤나 괜찮은 사람이며, 앞으로 더 좋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자 하는 욕구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의 현재 신념을 유지하려고 하는 욕구가 있다. 특히 낮은 자아존중감의 사람들은 자기에 대해서 긍정적인 피드백보다는 현재 자신이 믿고 있는 부정적인 특성에 대한 피드백을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다(Swann, 1990).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확신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그 긍정성을 수용하지 못 하는 불일치로 인해서 상대방을 지치게 할 수 있다. 간절함이 차오르는 만큼 흘려보내기우리는 누구나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긍정적인 것인지를 확인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러한 간절함이 지나칠 때 자신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즉, 자신의 문제와 감정에 과도하게 심취해서,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둔감해 지기 쉽다(Halmilton & Deemer, 1999; Orden & Joiner,2006 재인용). 내 안에 간절함이 차오를 때 우리의 초점은 오직 나를 향하게 되는데, 그럴 때 타인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간과할 수 있다. 이러한 탓에 우리의 간절함이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불안으로 인해 차오르는 간절함은 마음속에 간직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이 미덕일 수 있다. 생각을 붙들기보다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때, 그제야 내가 보지 못했던 외부의 세상이 내 안으로 또 흘러들어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Joiner, T. E. Jr., Katz, J., & Lew, A. (1999). Harbingers of depressotypic reassurance seeking: Negative life events, increased anxiety, and decreased self-esteem.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5, 632-639.Orden, K. A., & Joiner, T. E. Jr. (2006). The Inner and Outer Turmoil of Excessive Reassurance Seeking. In K. D. Vohs, & E. J. Finkel. (Eds.), Self and Relationships: Connecting Intrapersonal and Interpersonal Processes (pp. 104-129). New York: Guilford Press. Swann, W. B. Jr. (1990). To be known or to be adored: The interplay of self-enhancement and self-verification. In E. T. Higgins & R. M. Sorrentino (Eds.), Handbook of motivation and cognition: Vol. 2 (pp. 408-448). New York: Guilford.
2019 12월 G레터
남보다 못한 친한사이
친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바라지만, 많은 것을 바라는 탓에 그만큼 상처도 큽니다. 세상에 당연하게 유지되는 관계가 있을까요? 늘 옆에 있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많은 절제가 필요합니다. 한국인성교육연구소 장민희 책임연구원/심리학박사행복의 원천, 친밀한 관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 중 하나가 정서적 유대가 깊은 친밀한 관계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소망이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삶의 만족과 행복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질에 달려있다는 것을 많은 심리학자들이 입증해 왔다. 이처럼 친밀한 관계는 우리 삶의 행복과 만족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 역시 친밀한 관계에서 경험하는 정서적인 어려움이나 고통, 혹은 상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관계는 왜 우리에게 이러한 역설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일까? 친하기 때문에 바랄 수 있는 것들 흔히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에 대해서 나와 마음이 통하는, 때로는 나에게 위로를 제공하고, 나에게 여러 도구적 지지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라 인식할 것이다. 이는 사실 아주 타당한 기대이다. 실제로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지지(social support)는 우리에게 필요한 여러 현실적인 도움이나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 주기고 하고, 따뜻한 위로나 격려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정서적인 지지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Feeney & Collins, 2018). 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이러한 지지의 제공을 당연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다른 사람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것을 친밀한 가족, 연인, 배우자, 친구에게는 기대를 하게 되고 그 기대만큼 반응이 없을 때 우리는 낙심하거나 상처를 받게 된다. 즉, 지나친 기대는 그것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우리가 유독 친밀한 관계에서 자신의 욕구나 특성을 여과 없이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좋은 점만 보여주거나 사회적 기준에 맞게 예의바른 행동을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그래서 자신을 거부하지 않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상대방과 점점 더 친밀해주고 여러 비밀들도 함께 공유하면서, 우리는 그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즉, 내가 숨기고 있던 좋지 않은 특성이나 욕구도 그 사람에게는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도 상대방이 나를 거부해서 떠날 것 같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편하다고 해서 상대방의 지나치거나 함부로 하는 행동을 좋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흔한 말로 “편하니까”, “친하니까” 저지르는 실수이다.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오히려 드러내는 우리의 욕구와 무절제로 인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들을 너무 쉽게 할 수 있다. 심지어는 그런 행동으로 인해 우리의 관계가 되돌릴 수 없이 서로 공격을 주고받으며 파국을 맞이하기도 한다. 친밀한 관계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자기조절(self-regulation)’은 우리가 흔히 눈앞에 놓인 순간의 만족을 지연하면서 미래에 맞이할 더 큰 기쁨을 위해 스스로를 절제하고 통제하는 것이라 알고 있지만, 이것은 한 개인의 목표행동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맥락에서도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 친밀한 관계는 상대방, 그리고 관계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를 희생할 수 있을 때, 그리고 희생할 의지가 있을 때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단기적인 측면에서는 이러한 탈자기 행동(selfless act)이 불이익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이러한 희생과 헌신이 오히려 자신에게 되돌아옴으로써 더 나은 관계 만족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Rawn & Vohs, 2006). 또한, 상대방이 실수를 했을 때 우리가 감정적으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관련이 된다는 측면에서도 자기조절은 중요하다. 특질적으로 낮은 자기통제력을 가졌든, 아니면 일시적으로 자기조절 능력이 감소했든 이러한 낮은 자기조절은 상대방의 과실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상황에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을 낮추게 하며(Finkel & Cmapbell, 2001), 궁극적으로는 관계의 개선을 어렵게 만든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 우리는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고, 때로는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상대방을 비난하기도 하며, 남이라면 표현하지 않았을 많은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에 대해서 아무런 통제 없이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 있을까? 우리의 관계는 아무런 노력없이 당연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절제와 통제를 통해서 서로에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관계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매순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Feeney, B., & Collins, N. (2018). Social Support in Close Relationships. In A. L. Vangelisti, & D. Perlman (eds). The Cambridge handbook of personal relationships(pp. 282-310), Cambridge university press. Finkel, E. J., & Campbell, W. K. (2001). Self-control and accommodation in close relationships: An interdependence analysi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1, 263-277.Rawn, C., & Vohs, K. (2006). The Importance of Self-Regulation for Interpersonal Functioning. In K. D. Vohs, & E. J. Finkel (eds.), Self and Relationships: Connecting Intrapersonal and Interpersonal Processes(pp. 15-31), NewYork: The Guilford Press.